
좋은 설교에 노출 되는 것. 매 주 최소 한 편의 좋은, 양질의 설교를 듣는 것은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좋은 교회 공동체의 필요성에 대한 글도 언제고 쓰겠지만 좋은 설교에 대한 부분을 요즘 더 묵상하게 된다. 이미 좋은 공동체를 누리고 있고 일반적으로 좋은 설교를 듣고 있다고 말하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지만 정말 좋은 설교에 영향을 받고 있는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이제는 전도사로 모교회를 떠나 설교를 듣는 입장에서 전하는 입장에 가까워 졌지만 이제껏 들은 설교가 어디 가진 않는다. 내 삶을 돌아보며 내가 어떤 문장들로 이루어져 있는지를 찬찬히 살펴보면 기실 들어온 설교가 반절 이상인지라 더욱 그리 느낀다. 결국엔 내가 먹고, 보고, 들은 것으로 나를 구성하지 않겠는가? 그러니 내 생각과 말은 그 설교들이 잔뜩 묻어 있는지라 더욱 그렇다.
어쩌다가 이런 것들을 느꼈는가? 나를 돌아보는 것도 돌아보는 것이지만, 사역의 현장에 오니 새삼 느끼는 것이다. 성도로 모교회에 있을 때에는 내 주변의 성도들은 99퍼센트가 같은 교회인지라 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모교회를 나와 다양한 분들과 교제를 나누니 다른 점이 확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사람들 목사님의 설교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그 문장이, 그 전개가 어떤 감동이 있었는지, 나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아니 이런 것들이 어렵다면 으레하는 조언에서 묻어나오는 말들에 설교가 있어야 하지 않나..? 생각 하게 된다. 책에서, 영화에서, 누군가의 강의에서 영향을 받아 그것들을 인용하고 말하지만 좋은 설교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는다.
이것을 인지하게 된 것은 성경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였다. 큐티를 하면서 주어진 말씀, 매일 말씀을 읽다 마주친 그 말씀, 또는 설교중에 들은 한 마디로 개인이 깊게 더 묵상하여 주어진 말씀. 이러한 말들을 주고 받을 때 제 인생에서 영향을 계속해서 주는 설교의 문장들을 소개하니 그런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마치 그것은 성경 말씀이 아니라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리하여 무엇이 다른가 하고 생각하게 된다. 오히려 설교에서 추출된 그 한 문장이야말로 깊은 묵상의 결과물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요즘 묵상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생의 방향타 역할을 해주는 그 문장들이 무언가 수준 낮은 것으로 대해지는 것에 의아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스스로 묵상하지 못하느냐 하냐면, 좋은 문장들을 만들고 내 삶에 적용하지 못하느냐 하냐면 아니다.
애시당초 설교자인지라 그렇다고 한다면 너무 일축하는 것일까? 질문형 큐티집으로 몇 년, 그저 여백뿐인 큐티집으로 몇 년을 큐티하기도 했고 신학교에 가기 전에도 큐티한다며 주석 2-3개와 영어성경을 펼쳐놓고 말씀 묵상만 1-2시간을 해왔던 과거가 떠오른다. 이제는 설교자로써 마음에 새겨지는 한 문장을 위해 고민하곤 한다. 설교자이기 전에 성도로써 내 삶을 가꿔온 문장들이 얼마나 큰 힘이었는지 알기에 더욱 힘을 쓰게 된다. 그 한 문장은 설교를 대표하기도 하지만 설교의 내용은 다 까먹어도 그 한 문장이라도 남길 바라는 마음이기도 하다.
어떤 경험이 있었기에 그리도 좋은 설교, 한 문장에 집착하는가? 좋은 때에 나를 붙잡는 것보단 고난 중에 나를 붙든다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쉬이 무너질 수 없게 단단히 붙들어준다. 나를 놓아버리지 못하게끔, 어쩔줄 몰라 방황하지 않게끔, 좋은 어른이 없다며 투덜거릴 수 없게끔 말이다. 몇 문장을 소개해볼까 한다. 사실 어떤 것은 문장이라고 하기엔 너무 길다. 문장은 대표할 뿐 그 안의 이야기가 생생히 담겨있다. 요즘 부쩍 내게 자주 찾아오는 문장이 있다.
‘그건 그거고~’
어떤 이름 모를 목사님의 이야기라 한다. 한 목사님이 교회에 담임으로 청빙되어 부임했는데 막상 가보니 교회는 반쪽이 되어서 싸우고 있고 성도들은 계속 빠져나가는 상황이라 했다. 동분서주하며 노력해봤지만 성도들은 계속 빠져나가고 이것 저것 시도해보지만 결국엔 그 어떤 것도 성과를 내지 못하는 그런 상황. 그런 상황에서 목사님은 마지막으로 부흥회를 준비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수소문해 어떤 목사님을 모셔서 며칠간 부흥회를 진행했다더라. 그런데 사실 첫 날 설교를 들어보면 알지 않는가? 마지막 기회라 생각하며, 지푸라기라도 잡아보자며 불렀는데 이건 진짜 지푸라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설교를 못하는데다 의전은 다 받길 바라는 그 모습을 보니 분통이 터진다더라. 그래도 어쩌겠는가 모신 손님인데 끝까지 대접은 해야했던 상황, 부흥회 마지막을 앞두고 부흥강사와 목사님이 목욕탕에 갔다더라. 서로 때를 밀어주던 차에 속으로 갖은 불만을 품고 있던 목사님의 손놀림이 영 만족스럽지 않았는지 부흥 강사는 이리 말했다더라. “아니, 잘 좀 밀어봐유~” 부글 부글 끓던 속이 드디어 터졌다. 목사님은 억울한 마음 반 분한 마음 반 속에 담긴 것을 괜시리 부흥 강사께 토로 하는데 부흥 강사는 이렇게 답했다. “그건 그거고, 지금은 때나 좀 잘 밀어봐유~”하고 말이다. 그 때 목사님은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 그건 그거지. 내 상황이 어떻든지 내가 할 일을 해야지 하고 말이다. 좀 어처구니 없는 이야기일지라도 내겐 큰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이 말을 전해준 당시 담임목사님의 실력이 탁월한게 크다. 같은 이야기여도 누가 하는지에 따라 다르지 않는가? 내 부족한 기억력과 필력으로는 그 때를 재연할 수 가 없었다.
이 말이 어떻게 다가오는가? 누군가를 원망할 때, 어차피 바꾸지도 못하는 환경을 두고 스스로의 삶을 저주할 때 문득, 이 말이 떠오르는 것이다. 그건 그거고~ 하고 말이다. 그래, 어쩌겠나 원망한다고 바뀌는 삶도 아닌데, 그냥 내가 할 수 있는걸 하자. 이 또한 지나가겠지 하고 말이다. 고단할수록 그 상황을 떠받치는 문장은 늘어간다. 그건 그거고~ 했다가 이 또한 지나가리라 하기도 하고 큰 산을 작은 산처럼 여기자! 하며 상황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으려 하기도 한다. 끝까지 가면 간증이고 가다 말면 아무것도 안남는다며 마지막까지 버티겠노라 다짐하기도 한다. 그렇게 무너져도 다시 일어날 힘을 얻기도 하고 밀어도 잘 넘어지지 않게 되는 것 같다.
개인적인 삶에 이러한 영향을 받지만 사실 공동체에도 큰 영향을 준다. 같은 말씀을 받고 같은 것을 공유하는 것도 정말 큰 힘이 된다. 그리고 그런 좋은 말씀으로 삶이란 밭을 경작하는 이들이 교회에 한 사람씩 세워지는 것으로 자연스레 좋은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지게 된다는 것이다. 좋은 어른이 많은, 좋은 선배가, 좋은 친구가 참 많은 곳에서 자랐다. 나는 그 근간이 좋은 설교라 생각한다. 어딜 가든 좋은 이들은 꼭 있다. 그러나 같이 공감하고 신앙을 나눌 수 있는 좋은 사람들이 많은 곳은 참 드물다. 난 그것이 설교의 힘이라 생각한다. 좋은 설교는 결국 좋은 사람을 만들어내기에 그렇다.
마지막으로 개인 블로그를 남긴다. 못다한 설교의 이야기를 여기서 마무리하려 한다. 내 삶을 돌아보며 썻던 자전적 글 중 하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