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진이를 기다리며 서점에 들려 구경을 하다 문득 잡힌 글 [팔리는 글은 처음이라]
제목이 날 확 잡아끈 것은 이전에 한동안 내게 자극을 준 생각 때문일 것이다. ‘아니, 설교가 돈이 된다고?’ 라는 생각. 한 기독교 업체와 업무 협약을 맺어 설교나 다른 글귀를 쓰고 그것을 토대로 상품화 하자는 제안이었는데 설교가 돈이 된다는 생각을 아예 못하던 차라 큰 충격을 받고 한동안 속으로 ‘아니, 설교가 돈이 된다고..?’이러며 다녔었다. 사실 이건 ‘기획이 돈이 된다고..?’의 버전 2이긴 했다. 교회를 벗어나 여러 대표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내 아이디어와 기획을 가지고 수익 발생시 비율 조정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길래 이게 뭐지…? 했던 경험이 있었다. 늘상해오던 기획이 누군가에게 돈이 된다는게 참 신기했었다.
이런 배경에 구경하다 자연스레 눈길이 가 책을 짚었다. 한 30분정도 기다리며 60여 페이지 정도 읽었을까, 내용의 핵심은 간단했다. 내가 원하는 글이 아니라 시장이 원하는 글을 쓰라는 것. 익히 들어왔던 말이지만 고집 센 내게 적용이 어려운 말. 배움도 적용도 어려운 사람인지라 하나를 바꾼다고 전체가 바뀌진 않았던것 같다. 처음은 대화였다. 타인과의 대화는 내가 원하는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이 듣고 싶은 말을 해야하기에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대화를 연습해왔었다.
그 다음은 설교였다. 설교는 두갈래로 나아갔으니, 한 갈래는 하나님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실까? 였고, 다음 갈래는 사람들이 듣기에 좋은 연설법은 무엇인가 였다. 내용은 바꿀수 없으나 어떤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가, 어떻게 해야 집중하는가? 등 여러가지 고민은 계속 되었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말이다. 그러나 글은 좀 달랐다.
글은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니 시장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주인공이 아니라 언제나 글이, 내가 주인공이었던 셈이다. 그러니 내 글이 읽기 부적합한 글이 되는 것 같다. 무브먼트를 운영하며 스레드에서 홍보할 때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던 것도 마찬가지다. 그 글은 나를 위한 글보단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글이었다. 내 이야기를 쓰더라도 사람들이 흥미를 느낄법하게 글을 썼다. 그러니 반응이 꽤 괜찮았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가? 사실 이 [더 데일리 챕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나는 팔리는 글을 쓰는 것 같지는 않다. 아이들에게도 팔리는 글을 쓰라고 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왜 글을 쓰는가? 왜 글을 써야하는가? 사실 잘 모르겠다. 단체를 운영할 때는 어거지라도 해왔었고, 설교도 한 달에 한 번은 준비했었으니 항상 이유가 있어야 움직였다. 이 웹진은 나를 움직일만큼의 동력을 주진 않는다. 그렇다고 목적이 없느냐면 그런것도 아니다. 그저 조금 다른 단점을 맞이했을 뿐이다. 무언가를 책임지지 않아도 않아도 된다는 생각은 나를 가볍게 만들지만 또한 게으르게 만든다. 정신적으로 건강함을 찾지만 둔중해지는게 느껴진다. 어떻게든 균형을 찾아야 하리라. 아니면 산적한 문제들을 하나씩 해결하다보면 다시금 나를 다잡을 수 있을 것이다.
팔리는 글, 외면하던 주제라 생각한다. 몰려있는 내게 있어 팔리는 글은 사치에 가깝다. 왜냐하면 글만큼 나를 위로하는 것이 없기에 그렇다. 내가 나를 보며 나의 것을 내어놓는 것이 글쓰기다. 여기에 타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온전히 나만을 위한 것이었다. 물론 모든 글쓰기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말에도 글에도 총량은 있다. 나를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팔리는 글쓰기를 시작하면서 나를 보듬는 글 쓰는 연습을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